사역의 말씀

사역의 말씀에서 발췌
진리로 조성됨
주님의 회복은 진리의 회복임

오늘날 온 땅은 주님의 말씀 안에 있는 그분의 진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성한 말씀인 성경은 세상에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주님의 진리를 완전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많은 언어로 출판되어 온 땅에 보급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이 어떤 언어로 쓰였든지 상관없이, 그들은 성경을 읽은 후에도 그 안에 있는 깊은 비밀들을 참으로 이해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들은 나름의 문화와 철학과 전통과 관습과 윤리와 생활과 도덕에 따라 성경에 계시된 것들의 피상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성경 안에 있는 진리의 비밀들을 이해할 방도는 없다. 성경 안에 있는 진리의 비밀들은 매우 깊고 심오하다. 이 비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의 영적인 빛 비춤이 필요하고, 또한 이 비밀들을 파내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비교 고전 2:10-14).

주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진리들은 약 이천 년 전에 완성되었지만, 그 후 천 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지난 몇 세기에 와서야 주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의 열성적이고 세심한 연구를 통해 진리들이 다시 서서히 해방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회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주님의 회복은 잃어버린 바 된, 성경 안에 있는 모든 진리의 회복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회복은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큰 기둥들 중 하나이다. 주님의 회복은 진리들에 대한 지식의 회복에 달려 있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4권, 487-488쪽)

라이프 스타디와 회복역 성경을 통해 진리를 온전히 앎

신약은 거듭하여 우리가 진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바울은 이 문제를 언급할 때,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거듭해서 말한다(딤전 2:4, 딤후 2:25, 3:7, 딛 1:1). 이것은 우리가 단지 진리의 작은 부분이나 한 방면만이 아니라 진리 전체와 그 모든 방면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또한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라고 말한다(딤전 3:15). 이것은 성경 안에 있는 진리가 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초와 지붕 그리고 네 면이 완전히 갖추어진 커다란 건물과 같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을 확산시키고자 한다면, 진리를 알아야 하고 진리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치우치거나 특별한 기호를 갖지 않아야 하고 진리의 모든 방면을 알아야 한다.

진리는 많은 방면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중요 항목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성경은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믿는 이들, 교회, 왕국, 새 예루살렘 등에 관하여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사람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속과,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의 생명이 되심으로 사람이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고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그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영광 안으로 완전히 이끌리는 것으로 계속된다. 성경은 이 모든 문제들의 중심에 믿는 이들과 단체적인 교회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단체적인 교회는 왕국을 이끌어 오고, 그 궁극적인 표현인,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된다. 이 모든 방면이 성경의 진리들 안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진리를 더 깊고 상세히 생각해 본다면, 성경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의 두 방면, 곧 구속과 구원에 관해 말함을 알 수 있다. 구속의 방면은 죄들을 용서하심, 깨끗하게 하심, 의롭다 하심, 화목하게 하심, 기쁘게 받으심을 포함한다. 구원의 방면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그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게 하시고, 궁극적으로 그분의 영광 안으로 이끄시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이다. 우리는 부지런히 이 모든 것을 배우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얻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4장, 488-489쪽)

진리를 떠받침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임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라고 말한다. 장로들과 인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를 포함한 교회 전체가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다. 고대의 건축물들은 기반에 고정된 각각의 기둥이나 원주가 건축물을 지지했다. 바울은 교회가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과 기반이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이러한 건축물의 모양을 언급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마 자신에게 진리를 떠받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깊이 지각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장에서 모든 믿는 이가 함께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과 기반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새겨지기를 바란다.

바울은 진리를 떠받치는 본임

진리를 떠받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갈라디아서 2장 11절부터 14절까지에 있는 바울의 예를 살펴볼 수 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물러간 것은 복음의 진리에 어긋난 것이었고, 바울은 그것을 보았다. 우리는 베드로가 인도하는 사도였을 때,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 젊은이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에 비해 바울은 젊은 사도였다. 그러나 바울은 베드로가 진리에 어긋난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바울의 위치에 있었다면 베드로를 꾸짖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우리는 속으로 ‘나는 베드로가 틀린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나이도 더 많고 체험도 더 많으며 자격도 더 갖추었다. 나는 감히 어떤 것을 하거나 말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나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나는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을 일을 했기 때문에 면전에서 그를 책망하였습니다.”(갈 2:11)라고 했다. 베드로가 나이도 체험도 더 많았지만 그 당시에는 진리에 따르지 않은 어떤 것을 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진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는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었다.

모든 지체가 진리를 떠받칠 책임이 있음

바울은 사도였다. 그러나 성경은 사도들이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믿는 이를 포함하는 교회가 진리를 떠받쳐야 한다는 것을 계시한다. 모든 성도가 진리를 떠받치지 않으면, 교회는 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않은 채 장로들에게 다 맡기는, 단지 사람들의 무리가 될 것이다. 이것은 가련한 교회이다. 미국은 모든 시민이 헌법을 지킬 책임을 지기 때문에 강한 국가가 되었다. 심지어 대통령도 헌법을 위반할 수 없다. 헌법을 위반한다면 그는 해임될 것이다. 아무도 인도자를 건드릴 수 없는 나라들이 많다. 모든 성도들이 진리를 붙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주님의 회복 안의 교회들은 미국과 같아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틀림없이 대통령의 지위와 대통령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면 국민은 헌법을 지키는 그들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이와 같이 교회들 안에서 성도들은 장로 직분과 인도자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인도자들이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성도들이 진리를 붙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 집회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온전하게 하기 위한 것임

진리의 기둥과 기반인 교회는 모든 형제자매들을 포함한다. 자매들은 자매라는 이유만으로 진리를 아는 것에서 자신을 예외로 둘 수 없다. …

어떤 사람이 교회 집회에서 말할 때 모든 성도는 분별해야 함

… 교회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모든 형제자매가 반드시 진리를 알아야 한다. 만일 내가 진리에 어긋나는 어떤 것을 말한다면, 심지어 젊은 자매들도 일어서서 합당한 방법으로 나에게 그만두도록 권고할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진리를 배우고 실행함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바울은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각각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들이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라는 것은 교회의 모든 지체가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는 진리를 배우기로 결심해야 한다. 젊은 성도들이 그러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교회에는 장래가 없다. 교회가 새로운 지방으로 퍼져 나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도자들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람들이 부족한데, 이것은 우리가 매일의 교회생활에서 진리를 배우거나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매일의 교회생활에서 진리를 배우고 실행한다면, 모든 지체가 얼마씩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어디로 퍼져 나가든 문제가 없을 것이며,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강해질 것이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는 항상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모독하지 않고, 항상 진리를 배우고 지키며 떠받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와 진리는 교회생활을 인도하고 다스리며 보호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요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모독하지 말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와 관련된 어떤 일에서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또한 진리를 배우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한다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해질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78년, 2권,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위한 중요한 원칙들, 7장, 919-923쪽)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름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고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사역의 말씀 안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냄
성경에 있는 진리들의 회복에 대한 간략한 역사

우리는 성경에 있는 더 깊은 진리에 관심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수 세기에 걸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겼다. 4세기 초반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무언가를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후에 변절한 로마 가톨릭교회가 되었다. 6세기 후반에 교황 제도가 확립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가 완전히 형성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합당하게 이해할 역량이 평신도들에게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톨릭교회는 암흑시대로 알려진 시기를 이끌어 왔다. 약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성경은 닫혀 있었고 성경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이 상실되었다. 종교 개혁 기간에 성경은 평민들의 언어로 번역되어 폭넓게 배포되었다. 비록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성경이 열리기는 했지만 성경에 있는 많은 신성한 진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따라서 19세기에 주님은 말씀 안에 있는 진리들을 회복하시기 위해 영국 형제회를 일으키셨다.

나는 구원받은 후에 칠 년 반 동안 형제회의 모임에 참석했다. 그 기간에 나는 형제회 교사들에게서 상당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의 주된 강조점은 성경의 다음 세 가지, 즉 예표와 예언과 시대였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구약의 예표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전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스도는 놀라우시며 모든 것을 포함하시기 때문에, 신약의 말씀 자체만으로는 그분을 완전히 계시하거나 묘사하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많은 방면을 계시하기 위한 ‘그림’인 구약의 예표가 필요하다.

형제회는 예표와 예언과 시대에 대한 전문가였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생명과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 형제회는 그리스도에 관해 주로 생명의 방식이 아니라 교리의 방식으로 말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교회에 관해 말할 때 그리스도나 생명이나 그 영이 아니라 주로 시대와 관련하여 말했다. 형제회는 교리적인 지식으로 점유되고 그리스도와 생명과 그 영과 교회를 소홀히 여겼기 때문에 계속해서 분열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교회의 증거를 상실했다(비교 계 2:5).

주님은 형제회의 교사들을 사용하셔서 예표와 예언과 시대에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많은 진리를 회복하셨다. 과거에 형제회 가운데 있었던 진리의 회복에 기초하여, 지난 육십 년 동안 주님은 우리에게 더 많은 진리를 계시하셨다. 한 면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간 위대한 성경 교사들의 어깨 위에 오늘날 서 있으며 또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교회를 산출하기 위한 생명과 그 영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주님께 더 많은 빛을 받았다는 것을 신실하게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1권, 주님의 증거를 확산시키기 위해 진리 안에서 건축되고 생명 안에서 자람, 4장, 81-82쪽)

모든 믿는 이가 날마다 성경에 시간을 들임으로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름

오늘날 주님의 회복은 거룩한 말씀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들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배우기를 갈망하는 믿는 이들은 신학교에 가도록 격려받는다. 그러나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신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경을 읽음으로 진리를 배운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한다. 모든 믿는 이가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날마다 성경에 시간을 들임으로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믿는 이는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를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성경 육십육 권에 있는 신성한 계시는 지극히 심오하다. 성경의 내재적인 의미에 따라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수 세기에 걸쳐 신학의 다양한 학파가 나왔고, 수많은 성경 학교와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성경 강해서가 쓰였다. 대부분의 성경 학교와 신학교에서 학생들은 신학과 역사와 지리와 성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운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몇 가지 주류 학파가 있다. 이 모든 학파는 성경을 연구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서 나왔는데, 그들의 성경 연구 방식은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 곧 성경의 영적 의미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과 상충한다.

각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성경을 이해할 때 성경의 영적인 의미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 디모데전후서에서 바울은 모든 믿는 이가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를 수 있도록 교회들이 건강한 가르침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딤전 1:10, 2:4, 4:3, 6, 16, 5:17, 6:3, 딤후 2:15, 25, 3:7, 4:3).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에 따라 성경을 연구하여 성도들이 건강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합당한 방식으로 진리를 알도록 도와주어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1권, 주님의 증거를 확산시키기 위해 진리 안에서 건축되고 생명 안에서 자람, 4장, 82-83쪽)

《라이프 스타디》와 〈회복역 성경〉을 출간한 네 가지 목적

미국에서의 사역에서 처음 십일 년 동안, 나는 특별 집회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 왕국과 같은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메시지를 전했다. 나중에 나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는 성경에 있는 계시 전체를 충분히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성경의 각 책을 성도들에게 열어 줄 수 있도록 사역이 전진해야 한다고 느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한 권씩 연구하기 위해 1974년부터 반년마다 라이프 스타디 훈련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라이프 스타디》와 〈회복역 성경〉 각주를 출간하는 것에는 네 방면의 목적이 있다. 우리 목적의 첫 번째 방면은 성도들에게 성경에 있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길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기독교에 있는 많은 성경 강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진리를 제시하기 때문에 독자들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 각주는 단순한 단어들을 통해 독자들이 말씀 안에 있는 진리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비교 딤전 2:4, 딤후 2:15).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단순한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였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께서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실재요 생명이니”라고 선포하셨다. 요한의 글은 단순하지만 안에 담겨 있는 진리들은 심오하다. 이처럼, 성경에 있는 심오한 진리들을 제시할 때 나는 모든 믿는 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한 용어와 표현을 사용하기에 힘썼다.

우리 목적의 두 번째 방면은 우리가 성경을 온전히 아는 것을 방해하는, 성경에 있는 공통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다(비교 벧후 3:16). 성경의 거의 모든 책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중점이 있다. 나는 이러한 중점들을 합당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헬라어 사전들과 성구 사전들과 색인 사전들을 참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따라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 각주는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의 많은 중점에 대한 합당한 해석을 제공한다.

우리 목적의 세 번째 방면은 독자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다(비교 요 10:10, 롬 8:11, 딤전 4:6). 유감스럽게도, 전통적인 기독교에 있는 많은 책이 생명 공급을 거의 담고 있지 않다. 그러한 책들을 몇 시간 동안 읽더라도 우리는 충분한 생명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들 안에 있는 많은 성도는 그들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으면 풍성한 생명 공급을 받는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다.

우리 목적의 네 번째 방면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분의 경륜 안으로, 즉 계획과 목적과 안배를 포함하는 그분의 행정 안으로 이끌어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게 하고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엡 3:9).

나는 우리 가운데 있는 청년들이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진리의 좋은 기초를 얻도록 격려한다. 그들이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우리보다 앞서간 위대한 성경 교사들의 어깨 위에 선 것처럼, 그들 가운데 일부가 우리의 어깨 위에 서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진리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 우리는 기독교 고전 서적에 있는 긍정적인 중점들을 찾아내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중점 대부분이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 각주 안에 녹아들어 있다. 우리가 사역의 출판물에 시간을 들인다면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1권, 주님의 증거를 확산시키기 위해 진리 안에서 건축되고 생명 안에서 자람, 4장, 83-85쪽)

시간을 아껴 합당한 영적 교육을 받음으로 진리를 가르침

효과적으로 진리를 가르치려면 우리는 진리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진리를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나는 성도들이 일주일에 오 일은 《라이프 스타디》 한 메시지와 그에 해당하는 〈회복역 성경〉 절들과 각주와 관주를 연구하도록 격려한다. 성도들이 이것을 실행한다면 몇 년 내에 신약 전체에 대한 합당한 이해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약을 읽기 위해 시간을 아끼기를 배워야 한다(비교 엡 5:16). 니 형제님은 대학생일 때 일 년 동안 쉰두 번, 즉 일주일에 한 번씩 신약을 읽겠다고 결심했다. 형제님은 부지런히 공부했고 학급에서 최상위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형제님은 신약을 읽기 위해 시간을 아끼기에 힘썼다. 마찬가지로, 나는 육신의 건강을 위해 휴식이 필요한 나이 든 사람이지만 말씀의 사역에서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매 순간을 아끼려고 힘쓴다고 간증할 수 있다.

나는 요한일서 1장 6절에서 ‘진리’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의미에 관한 〈회복역 성경〉 각주 하나를 쓰는 데 약 일주일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 나는 여러 권의 용어 사전과 색인 사전을 연구해야 했다. 이 각주를 연구한다면 우리는 ‘진리’라는 단어의 내재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사회에서 책임을 감당하는 시민들이 되려면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듯이, 주님의 회복에 있는 청년들 역시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를 수 있도록 영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합당한 영적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유감스럽다. 그러나 〈회복역 성경〉 각주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회복에 있는 성도들이 견고한 영적 교육을 받도록 주님께서 주신 공급이다. 교회들 안에서 장로들은 주님의 상 집회와 기도 집회 후에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을 읽도록 성도들을 격려할 수 있다. 성도들이 매주 몇 편의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는 것을 실행한다면 오 년 내에 오백 메시지 이상을 읽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도록 시간을 아끼는 데 힘써야 한다. 청년들은 자신에게 앞으로 많은 시간이 있으며 자신이 말씀 안에 있는 진리를 연구하여 합당한 영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황금기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긍휼로 우리가 〈회복역 성경〉 각주와 함께 신약 《라이프 스타디》를 읽는 데 일주일에 오 일을 사용하기로 결심한다면, 오 년 동안 꾸준히 실행한 후에는 신약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신약의 다양한 주제들과 신약의 각 책에 계시된 진리의 핵심 중점들에 대한 지식도 갖게 될 것이다. 신약에 있는 신성한 진리의 모든 핵심 중점을 연구하는 최상의 길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 각주를 신약의 순서에 따라 책별로, 장별로 읽는 것이다. 영양학자들은 건강한 식사를 하려면 다양한 영양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균형 잡힌 영적 식사를 하려면 다양한 영적 ‘영양분’을 담고 있는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을 읽어야 한다. 나는 나이가 많든 적든 모든 성도가 시간을 아껴서 이러한 사역의 책들을 여러 해 동안 읽도록 격려한다. 이렇게 한다면 그들은 천국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들’, 즉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하고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진리를 가르칠 자격을 갖춘 이들이 될 것이다(비교 마 13:52, 딛 1:9).(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1권, 주님의 증거를 확산시키기 위해 진리 안에서 건축되고 생명 안에서 자람, 4장, 85-87쪽)

라이프 스타디를 사용함
성경에 나타난 제일 중요한 계시

성경에 나타난 제일 중요한 계시는 생명이며 생명은 온 성경의 초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누구인가? 해답은 주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다” 그리고 “내가 온 것은 너희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계시하고 있다. 성경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온 성경은 생명의 책이며 이 생명은 우리의 기업이신 그리스도 예수 자신의 살아 있는 인격이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그분을 접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했지만 주 예수님께로 오기를 원하지 않는 가련한 유대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요 5:39-40). 우리는 주님을 접하지 않고 성경을 대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펼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 예수여, 주님이 여기 계셔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주님을 계시한 것입니다. 주님을 접함이 없이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주님 외의 다른 것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습니다. 인쇄된 지면(紙面)에서 주님의 어떠하심을 깨닫기 원합니다. 오 주 예수여, 주님의 말씀을 밝혀 주시고 구절구절 위에 기름 부음을 주시어 주님을 만지게 하소서.” 살아있는 주님의 말씀을 접하려면 이와 같은 영이 필요하다.

사람이 창조된 후 그는 에덴 동산에 있는 두 나무 앞에 놓여졌다. 하나는 생명나무였으며 다른 하나는 지식의 나무였다. 만일 사람이 생명나무의 실과(實果)를 먹었다면 생명나무가 표시했던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근원, 즉 사탄을 나타내는 지식의 나무의 실과(實果)를 따고 말았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원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기도함으로써 성경을 우리의 영으로 대하고 말씀 가운데 계신 그분을 생명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성경을 생명의 책으로 누릴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다만 머리 속에서 의문(儀文)에 있는 지식만 구하려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지식의 책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죽음을 줄 뿐이며 생명을 주지 못한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의 말씀은 “…의문(儀文)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라고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죽이는 의문의 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을 주님의 영으로 대하여 우리에게 영과 생명이 되도록 해야 한다.(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1장, 19-20쪽)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생명을 접촉하게 함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의 또 다른 기능은 사람들을 생명 안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라이프 스타디》는 성경과 관련 없는 철학 서적이나 고전 문학 전집이 아니다.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성경을 강해하고 진리를 제시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들을 진리 안으로 이끌어 그 풍성을 누리고 체험하게 한다. 단순한 성경 해설은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여 생각으로 교리를 알게 해 줄 뿐이다.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우리를 성경의 깊은 부분까지 이끌어 성경 안에 있는 생명을 접촉하고 누리게 한다(비교 요 5:39-40).

많은 그리스도인이 출애굽기 12장을 읽은 후, 유월절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만 알 뿐 일어난 사건의 의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통해 우리 모두는 이 문제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배로운 피를 적용할 수 있고, 어린양의 고기를 누릴 수 있으며, 무교병과 쓴 나물의 실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생명 연구’인 《라이프 스타디》는 성경 안에 담긴 생명 공급과 누림을 얻도록 사람들을 성경 안으로 안내해 주는, 성경에 대한 합당하고도 정확한 연구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1장, 453-454쪽)

풍성한 집회의 요인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들과 설교자들은 설교를 위한 좋은 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목사들은 말할 것이 없어서 개인위생 관리 같은 것에 관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좀 더 나아서, 구속과 죄들을 씻음과 의롭다 함과 같은 문제들에 관해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좀 더 깊어서, 주님과 어떻게 교통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안을 어떻게 누리는지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의 체험과 연구를 통해, 가장 풍성한 집회는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내용으로 하는 집회라는 것을 보았다. 주일마다 우리가 교통할 내용으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두 편을 선택한다면 집회는 아주 풍성할 것이다.

여름, 겨울 라이프 스타디 훈련 집회를 수행하기 위해 나는 십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고해 왔다. 올해에 신약 전체 라이프 스타디를 마쳤고, 성경 전체 라이프 스타디를 완성하기 위해 내년부터 또 십일 년간의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회복의 교회들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매주 《라이프 스타디》 한두 메시지를 정독하는 실행을 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오랜 기간, 즉 십 년이나 팔 년 혹은 오 년 동안이라도 이렇게 한다면, 성도들은 모든 방면에서 대단히 진보할 것이며 교회 전체 상태 또한 전환될 것이다.

영양학자들은 건강하려면 한 종류의 음식만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생선은 영양분이 매우 많다. 그러나 다른 것은 전혀 먹지 않고 하루 세끼 생선만 먹는다면, 틀림없이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예를 들면, 샐러드에는 한 종류의 야채만 있지 않고 많은 종류의 야채가 함께 섞여 있어서 풍성하고 영양분이 많다.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한 종류의 야채가 아닌 여러 종류의 야채로 만든 샐러드와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식(主食) 곧 중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의 중심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을 때 그 메시지는 우리를 생명 안에서 강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와준다.

1974년 이전에 우리는 특별 집회를 통해 한 번에 하나의 주제에 관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주로 강조했다. 나중에 우리는, 생명이 중심이므로 생명의 문제를 캐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 이후 계속해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통해 성경의 각 권에서 생명을 캐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는 신약의 모든 책은 물론 구약의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도 생명을 캐내었다. 비록 성경이 포괄적으로 쓰이고 다양한 항목에 관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길을 명확히 지시하기 위해 항상 생명을 그 중심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여섯 장뿐인 에베소서 같은 짧은 책도 그 구성이 포괄적이며 많은 항목들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는 영원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택과 미리 정하심(1:4-5)과 같은, 더 이상 높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높은 문제들에 관해 말한다. 또한 이 서신서는 도둑질하는 사람은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4:28)과 같은, 더 이상 낮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낮은 문제들에 관해서도 말한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미리 정하심이라는 항목을 선택해 말하려고 한다면, 도둑질하는 것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그러한 높은 문제들에 관해 말한 후에, 도둑질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는 문장을 갑자기 삽입하였다. 이 서신서는 또한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한다(5:25, 22). 이것은 성경이 포괄적인 방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럴지라도 성경에는 여전히 그 중심이 있다.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사용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 중점을 견고히 붙잡아야 하고, 성경에는 하나의 내재적인 중심 노선이 있으며 또한 성경이 많은 문제들에 관해 포괄적으로 말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1장, 454-456쪽)

진리를 앎으로써 생명을 체험함 - 중복

주님은 우리를 어둠 속에 버려두지 않으셨다. 오늘날 주님의 모든 진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에 담겨 있다. 우리는 성경이 생명의 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이 생명의 책인 까닭은 그 내용 전체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체험이 많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알지 못하거나 성경 안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슈퍼마켓에 가서 식료품을 사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누리기 원한다면, 성경으로 가서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얻어야 한다. 성경 안의 모든 진리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위한 음식이다.

성경은 단지 지식의 책이 아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지식은 사실상 진리이며, 이 진리 안에는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성경을 읽을 때 단지 문자만을 연구할 뿐 그 안에 담긴 내재적인 진리를 연구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 독자들은 말씀의 문자를 통해 전달되는 진리를 보아야 한다. 진리를 보기만 하면 저절로 생명을 만지게 된다. 《라이프 스타디》를 출판한 목적은 말씀의 문자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므로 《라이프 스타디》를 주의 깊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분명 어느 정도의 체험을 얻게 될 것이다. 《라이프 스타디》는 참된 생명 공급을 얻도록 우리를 성경의 진리 안으로 이끌어 준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은 진리와 생명의 회복이다. 우리 모두는 기독교의 하락이 기독교가 진리와 생명을 잃어버린 것에 기인함을 알고 있다. 기독교는 이렇게 진리와 생명을 상실한 결과, 결국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많은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조직들을 만들었다. 주님은 어떤 조직이나 사람의 방법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교회가 진리이신 그분을 알고, 생명이신 그분을 받아들이고 누리기를 원하신다. 교회의 내용 전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진리와 생명으로서 자라시는 것이다. 이것은 과일나무들에서 산출되는 생명의 과일들이 과수원의 내용 전체인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과수원에서는 어떤 조직이나 행위를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과일나무들이 생명의 성장의 결과로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들의 상황이어야 한다. 교회들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사람의 방법들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6절과 9절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성장하도록 심고 물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공급하기를 원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6장, 516-517쪽)

어린양들을 먹이기 위해 진리로 장비되고 생명이 성장함

요한복음은 생명에 대한 책이며, 요한은 또한 그의 저서들에서 특별히 ‘진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처럼 서신서들에서도 먼저 진리를 언급하고, 그 후에 생명의 문제를 제시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영적인 원칙을 보여 준다. 진리가 없다면 생명 또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이 없다면 진리 역시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주님은 생명과 진리를 함께 두셨다. 그다음 15장에서는 열매 맺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것은 열매 맺는 것이 생명과 진리와 아주 많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체험적으로,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왜 우리에게 열매가 없는가? 그것은 생명에 있어서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풍성함이 있다면 저절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열매 맺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생명의 성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생명의 성장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또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단 진리를 갖게 되면,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 안으로 인도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어린양들을 목양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린양들에게 먹일 것이 전혀 없을 것이고 그들을 돌볼 길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생명이 자라지 않아도 여전히 사람들을 인도하여 구원받고 침례 받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부족하면, 먹이는 책임을 합당하게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위해 먹을 음식과 마실 음료를 항상 준비해 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린양들을 위해 영적인 음식과 젖을 준비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이며(요 6:35, 63) 영적인 젖이다(벧전 2:2). 우리가 성경에 있는 진리와 주님의 말씀을 안다면, 우리의 어린양들에게 많은 영양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요한복음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함으로써 어린양들을 먹일 수 있다. “요한복음 1장은 주님께서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육체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그분과 함께 진리가 왔는데,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고 나서 8장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하고, 17장은 우리가 진리로 거룩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실상 진리는 바로 주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항상 그분께 기도해야 하며, 매일 그분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요한복음은 생명과 진리에 대해 말한다. 이 생명과 진리는 바로 주 예수님이며, 오늘날 그분은 우리 안에 사시면서 날마다 우리에게 공급을 주시는 그 영이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은, 주님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시라고 말한다(35, 48절). 그분을 먹을 때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산다(요 6:57).

진리에 대한 풍성한 지식과 생명에 대한 상당한 체험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어린양들을 방문하러 갈 때 그들의 상황에 맞는 말씀의 젖을 그들에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어린양들을 먹이는 합당한 실행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부분은 어린양들을 만날 때 대개, “주일 집회에 참석하셨습니까? 왜 집회에 오지 않으셨습니까? 집회가 참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꼭 오십시오.”라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어린양들에게 거듭해서 이러한 말밖에 할 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우리에게 아주 싫증을 내고, 점차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집회가 참 좋습니다. 꼭 오십시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을 먹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법정에 출두하라고 소환장을 내미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급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에게 싫증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들을 만날 때 “집회가 참 좋습니다. 꼭 오십시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그들에게 진리를 말해야 한다. 진리는 주님의 말씀이다. 아마도 어떤 성도들은 “말씀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요한복음도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주님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들을 통해서 이미 신약 전체를 우리에게 열어 주셨다. 만일 누군가가 요한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든 진리가 열려 있는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를 읽어야 한다.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으면 곧 요한복음의 내재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7장, 537-539쪽)

라이프 스타디를 장려함
교회생활의 표준을 높이고 주님의 움직이심을 촉진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보양됨

우리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음으로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보양되지 않는다면 교회생활의 표준은 낮은 데 머물 것이다. 메시지 안에 있는 영적인 자양분을 받음으로 우리는 교회생활의 높은 표준을 세울 수 있다. 최근에 동아시아에 있는 많은 교회들이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안에 있는 영적인 자양분을 얻음으로 부흥을 체험했다. 그 교회들에 있는 성도들은 메시지를 읽음으로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릴 뿐 아니라 집회에서 서로 이러한 풍성을 나눔으로 교회 집회를 살아 있게 하고 교회 집회를 공급한다. 교회생활의 표준을 높이고 우리 가운데서 주님의 움직이심의 과정을 촉진하려면 《라이프 스타디》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풍성에 참여해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77, 1권, 애너하임의 여러 집회에서 전한 메시지, 1장, 757쪽)

진리를 배우도록 장려함

… 이제 신약 전체의 《라이프 스타디》가 출판되었으므로, 나는 모든 교회가 이 일련의 책들을 진리 연구를 위한 기초로 삼아 진리를 배우도록 대대적으로 장려하기를 바란다. 모든 교회에서는 성도들 모두가 〈회복역 신약성경〉, 특히 각주들을 주의 깊고 철저하게 연구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과업이다. 과거에 우리는 우리에게 할 일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참으로 어떤 것을 하기 원했을 때에도, 그것을 수행할 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길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제시되었고, 모든 것은 우리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면, 삼 년 내지 오 년 후에는 온 교회가 진리를 배우는 일에서 크게 진보할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8장, 546-547쪽)

진리는 사람에게 빛과 자유를 줌

주 예수님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8:32). 진리 안에는 빛이 있고, 우리는 빛을 받는 즉시 자유롭게 된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도 구약성경을 읽었지만, 그들은 진리의 빛이 없이 문자만을 연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주 예수님께서 설명을 하시면, 진리가 계시되었다. 예를 들면, 부활 같은 것은 있지 않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질문을 하러 왔다. 주 예수님은,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부분인 출애굽기 3장 6절에서 모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요, 이삭의 하나님이시요,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지적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셨다(막 12:18-27, 눅 20:27-38).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에, 이것은 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부활하게 될 것임을 증명한다. 이 사례는, 주 예수님께서 진리에 대한 지식과 성경에 대한 빛이 매우 완전하셔서 성경을 단지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으시고 그 안에 함축된 생명과 능력에 따라 해석하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이 또한 《라이프 스타디》의 초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 힘써 성경을 읽고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자료가 부족한 것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진리를 연구하고 주님을 알고 추구하기 위해 일어선다면, 이것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크고 참된 교회 부흥을 가져올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8장, 554-555쪽)

진리를 앎으로써 생명을 체험함

주님은 우리를 어둠 속에 버려두지 않으셨다. 오늘날 주님의 모든 진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에 담겨 있다. 우리는 성경이 생명의 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이 생명의 책인 까닭은 그 내용 전체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체험이 많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알지 못하거나 성경 안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슈퍼마켓에 가서 식료품을 사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이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누리기 원한다면, 성경으로 가서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얻어야 한다. 성경 안의 모든 진리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위한 음식이다.

성경은 단지 지식의 책이 아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지식은 사실상 진리이며, 이 진리 안에는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성경을 읽을 때 단지 문자만을 연구할 뿐 그 안에 담긴 내재적인 진리를 연구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 독자들은 말씀의 문자를 통해 전달되는 진리를 보아야 한다. 진리를 보기만 하면 저절로 생명을 만지게 된다. 《라이프 스타디》를 출판한 목적은 말씀의 문자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므로 《라이프 스타디》를 주의 깊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분명 어느 정도의 체험을 얻게 될 것이다. 《라이프 스타디》는 참된 생명 공급을 얻도록 우리를 성경의 진리 안으로 이끌어 준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은 진리와 생명의 회복이다. 우리 모두는 기독교의 하락이 기독교가 진리와 생명을 잃어버린 것에 기인함을 알고 있다. 기독교는 이렇게 진리와 생명을 상실한 결과, 결국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많은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조직들을 만들었다. 주님은 어떤 조직이나 사람의 방법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교회가 진리이신 그분을 알고, 생명이신 그분을 받아들이고 누리기를 원하신다. 교회의 내용 전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진리와 생명으로서 자라시는 것이다. 이것은 과일나무들에서 산출되는 생명의 과일들이 과수원의 내용 전체인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과수원에서는 어떤 조직이나 행위를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는 과일나무들이 생명의 성장의 결과로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들의 상황이어야 한다. 교회들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조직이나 사람의 방법들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6절과 9절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성장하도록 심고 물을 줌으로써 그들에게 공급하기를 원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6장, 516-517쪽)

주님의 회복 안에 참된 부흥을 이끌어 올 수 있도록 《라이프 스타디》 연구를 장려함

우리는 모든 가정에 《라이프 스타디》가 있고 모든 성도가 외적으로뿐 아니라 내적으로 《라이프 스타디》를 소유할 때까지, 모든 대륙에서 《라이프 스타디》를 가정에 두고 읽기를 장려할 부담을 가져야 한다. 《라이프 스타디》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도록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심지어 백 번을 읽어도 성경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회복역 신약성경〉을 펴서 보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의 진리를 열어 주는 각주들이 있다. 일단 진리의 말씀이 열리면, 우리는 계시를 받게 된다. 그러고 나서 《라이프 스타디》를 읽으면, 훨씬 더 많은 빛 비춤을 얻게 된다. 《라이프 스타디》를 읽은 후에는, 연구했던 몇몇 절이 우리에게 완전히 열릴 것이다. 에베소서는 여섯 장밖에 안 되지만, 〈에베소서 라이프 스타디〉에는 아흔일곱 메시지가 있다. 하루에 두 메시지를 읽는다면, 다 읽는 데에 오십 일이 필요할 것이다. 오십 일을 들여 이 아흔일곱 메시지를 모두 읽은 후에는, 에베소서 여섯 장 전체의 내용과 모든 문장과 모든 단어가 우리에게 분명해지고 빛 비춤을 줄 것이다. 달리 말해서, 비밀스럽고 놀라운 책인 에베소서가 우리에게 완전히 열릴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5권, 주님의 회복의 네 가지 큰 기둥 ― 진리, 생명, 교회, 복음, 9장, 570쪽)

《라이프 스타디》와 〈회복역 성경〉

과거 십 년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유익한 문서와 출판물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와 〈회복역 성경〉 각주라는 것이 우리 가운데서 완전히 입증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학문적인 연구를 하여 학위를 얻도록 그것을 저술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공급하고 진리를 해방하며 성경을 열어 주려는 목적으로 저술했다. 우리에게는 학문적인 연구를 위한 책들이나 사람들이 학위를 얻도록 도움이 되는 책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큼은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학(神學)을 위해 있지 않고, ‘신(神)’ 곧 하나님을 위해 있다. 우리의 출판물은 어떤 종류의 ‘학문’을 위해 있지 않고, 하나님, 삼일 하나님,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 그 영, 생명, 교회를 위해 있다. 우리의 출판물은 살아 계신 인격을 위해 있지, 어떤 ‘학문’을 위해 있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학문이나 교회에 관한 학문이나 신성한 것들에 관한 학문을 위해 있지 않다. 오히려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로 충만하며,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생명 주시는 영으로 충만하며, 생명으로 충만하고, 교회로 충만한 것들을 출판할 부담을 갖고 있다. 주님의 회복은 바로 우리 안으로 분배되시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며,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가 주님의 회복의 중심 내용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와 그 영과 생명과 교회의 회복에 관해 이처럼 풍성하고 빛 비춤과 자양분을 풍성하게 주는 책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실제 상황이며 참상태이므로, 나는 우리가 《라이프 스타디》를 사용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이것이 사람들을 거룩한 말씀 안으로 이끄는 최상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편 119편 130절의 거룩한 말씀은 “주님의 말씀들이 열리면 빛이 비치어”라고 말한다. 수백만 권의 성경이 배포되었다. 호텔, 가정 등 많은 곳에 성경이 놓여 있다. 오늘날 여러분은 가는 곳마다 거의 성경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성경 안으로 들어갔는가? 지금까지 거의 입구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갖고 있지만, 그 성경은 닫힌 채로 있을 뿐 거의 열린 적이 없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에게 열쇠와 병따개를 주셨다. 나는 우리 문서가 거룩한 말씀을 여는 병따개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분 중에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어 본 사람들이 〈회복역 성경〉 각주와 함께 이들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성경의 각 권과 각 장을 열어 주었음을 정직하게 증언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것은 성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성경 안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2권,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0장, 395-396쪽)

말씀의 견고한 기초가 필요함

… 나는 여러분이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안으로 꾸준히 들어간다면, 오십 일 후에는 달라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어떤 책도 좋다. 창세기나 출애굽기나 마태복음이나 요한계시록과 같은 책의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는 여러분이 연구하기에 좋을 것이다. 다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읽으라. 주님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우리가 어떤 종류의 개인적인 느낌이나 개인주의적인 의견을 붙잡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오로지 주님의 회복의 권익과 주님의 회복 안으로 들어온 사랑스러운 모든 성도의 유익에 관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이것에만 관심을 둔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 안으로 들어가고 이러한 진리가 우리 존재 안으로 조성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없지만, 이것이 우리의 실행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부담은 모든 인도자들, 곧 장로들이나 어떤 봉사를 인도하는 이들이, 주님께서 그들의 지방에 있는 성도들에게 진리 안에서 주님을 추구하고자 하는 관심과 마음과 영을 불러일으켜 주시도록 참된 부담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다름 아닌 성경 안에 있지만, 여전히 성경은 병따개가 필요하다. 우리는 성도들이 성경의 필요성과 《라이프 스타디》와 〈회복역 성경〉의 도움의 필요성을 참되고 올바르고 합당하게 깨닫도록 성도들을 인도해 주어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2권,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0장, 399-400쪽)

말씀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세움

우리는 성도들이 매일 말씀 안에서 적어도 삼십 분을 보내는 실행이나 습관을 세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은 아침에 십 분, 저녁에 십 분, 잠자리에 들기 전 십 분으로 나누어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루에 적어도 삼십 분을 들이는 실행을 세워야 한다. 최상의 길은 성도들에게 신약에서 그들이 원하는 책을 선택하여 연구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매일 계속해서 그 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몇몇 성도는 로마서나 히브리서를 연구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그들은 매일 십 분씩 세 번 연구하거나, 삼십 분씩 한 번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권유하여 이 책의 두세 절을 매일 기도로 읽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 부분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연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모든 절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 성도들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를 기도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몇몇 절에 담겨 있는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그 절들을 기도로 읽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진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각주와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도들은 매일 이렇게 하여 진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성경을 연구하여 일 년이 지날 때, 성도들의 가정생활과 개인 생활과 교회생활에 확실한 변화가 있게 될 것이다. 몇 개의 절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느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호흡하는 것이 느린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 번에 조금씩 호흡하지만, 이러한 계속적인 실행이 축적되어 우리를 계속 살아 있게 한다. 이것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약성경 전체를 끝마치는 데 심지어 십 년이 걸린다 해도, 그것은 훌륭할 것이다. 오 년이 지난 후에 신약 절반에 담겨 있는 진리를 얻는다면, 이것은 놀라운 것이다. 우리는 성도들이 욕심을 부리도록 부추기거나 하루에 성경 한 권씩 마치기를 시도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위는 터져 버릴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들을 격려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이 천천히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인내의 문제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성경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매주 그들에게 상기시켜야 하며, 때로 장로들은 성도들에게 어떤 인도와 격려와 동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vol. 2,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0장, 400-401쪽)

합당한 음식이 필요함

… 여러분은 교회를 목양하는 것이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중년 등 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대가족을 돌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합당한 음식을 주어야 하며, 자양분을 공급하고 치료하고 세균을 죽이는 최상의 음식이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내가 ‘나의 상품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에게서 나온 그러한 생각을 잊어버리기를 간청한다. 나는 나의 상품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진리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하는 형제들인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방에서 주님의 진리를 추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성도들 안에 진리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생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리는 오직 거룩한 말씀 안에만 있으며,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최상의 도움은 각주가 있는 〈회복역 성경〉과 모든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라고 그들에게 말해 주라. 물론 우리는 어느 것도 율법적으로 실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율법적인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도들이 주님의 회복을 사랑한다면, 그들은 항상 건강한 음식을 먹고 강건하게 될 것이다. 합당한 음식을 규칙적으로 먹은 결과, 성도들은 강해지고 주님은 강한 증거를 갖게 되실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2권,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0장, 402-403쪽)

주님의 말씀 안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짐

우리는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갖도록 격려해야 하며, 이것을 일상생활의 정해진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권면해 주어야 한다.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피로하든지 간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말씀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루에 삼십 분을 떼어 놓아야 한다. 그것은 모두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 뜻이 있다면 길은 있다. 스물네 시간 가운데 삼십 분을 떼어 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성도들이 한 시간이나 그 이상을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물기를 실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놀랍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매일 삼십 분을 주님께 드리도록 성도들을 격려해야 한다. 성도들은 격려를 받고 매일 삼십 분을 주님께 거룩히 분별하여 드려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주님을 매우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이라고 믿는다. 그다음에 각 지방의 모든 교회는 성도들이 진리를 온전히 아는 데 이르도록 합당하게 교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집회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찾아야 한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vol. 2,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3장, 442-443쪽)

진리를 배우고 실행함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 바울은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기반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각각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들이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기반이라는 것은 교회의 모든 지체가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우리는 진리를 배우기로 결심해야 한다. 젊은 성도들이 그러한 결심을 하지 않으면 교회에는 장래가 없다. 교회가 새로운 지방으로 퍼져 나가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도자들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람들이 부족한데, 이것은 우리가 매일의 교회생활에서 진리를 배우거나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매일의 교회생활에서 진리를 배우고 실행한다면, 모든 지체가 얼마씩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어디로 퍼져 나가든 문제가 없을 것이며, 각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강해질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78, 2권,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위한 중요한 원칙들, 7장, 923쪽)

진리의 연구에 있어서 진보해야 함

… 오늘 우리가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한 무리의 학생들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그들이 다 상당히 많은 책들을 읽어서 논리와 이론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복음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나 내가 시골로 내려간다면 복음은 그다지 쉽게 전파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지식이 없으므로 깨닫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사람에게는 지식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다. 만일 여러분이 성경의 진리를 분명하게 이해하여 사람들, 특히 대학생들 앞에 놓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것을 귀히 여길 것이다. 반대로 여러분들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 낮다면 캠퍼스에서 복음을 잘 전할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필사적으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여전히 이전의 모습과 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다시 2년 간 신학을 배운 후 전도자로 나온다면 이 길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낙후된 길이며 이 시대의 필요에 부응할 수 없다. 여러분은 반드시 수고하여 진리에 있어서 알차게 장비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에 대한 나의 부담이다.(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 1장, 40쪽)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김

주님을 부지런히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두 시간씩 연구할 때 아마 이 년 반이면 신약 전체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가 칠 년 반에 걸쳐 신약 전체를 끝마쳤다면, 이것도 여전히 놀라울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결코 잊지 말라.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긴다. 우리가 천천히 계속해서 간다면, 경주에서 이길 것이다.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지게 될 것이지만, 수고하는 사람들은 경주에서 이길 것이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꾸준하게 천천히 먹어야 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너무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가라고 충고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목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십 년 전에 이것을 실행하기 시작했다면, 벌써 신약 전체를 끝냈을 것이다. 심지어 여러분이 신약의 절반만 마친다 해도 여러분은 자신이 달라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 전체가 신약의 절반을 마칠 수 있다면, 그 교회는 달라질 것이다.(위트니스 리 전집, 1984년, 2권, 장로 훈련, 3권: 이상을 실행하는 길, 13장, 447쪽)

시대적 전환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안에 있다고 주님의 긍휼로 간증할 수 있다. 최근에 어떤 젊은 형제는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라이프 스타디의 모든 풍성으로 조성되라고 권면했다. 나는 이 형제의 말에 찬성한다. 만일 젊은이들이 이런 식으로 조성된다면 회복 안에는 큰 시대적 전환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라이프 스타디의 모든 메시지들로 조성되기 위해 앞으로 수년의 시간을 들이라고 격려하고 싶다. 만일 젊은이들이 수년 동안이 메시지들로 적셔진다면, 즉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관한 말씀으로 적셔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전시간으로 섬기는 데 있어서 유용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변케 할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라이프 스타디 안에 있는 풍성은 전체 기독교 사회에 알려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가운데서 많은 살아 있는 그릇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으로 조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젊은이들만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로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매우 나이든 사람도 여전히 이 메시지들로 조성될 시간이 있으며, 온 땅에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함으로써 주님을 섬길 시간이 있다.(사도행전 라이프 스타디, 55장, 469-470쪽)